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랑스 혁명 전쟁 (문단 편집) ====== 만토바 ====== 그리고 [[만토바]]를 공략하던 중인 나폴레옹을 찌르기 위해 뷔름저 공작의 오스트리아군(1차 구원군)이 후방을 급습하자 나폴레옹은 만토바에 있던 공성용포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만토바를 포위해제한다. 되살아난 기동력을 바탕으로 빠른 우회기동을 통해 뷔름저공작 군대의 후미를 공격하였고 뷔름저는 비어있는 만토바 입구로 재빠르게 도망쳤고 일단 만토바 요새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주르당과 모로의 삽질로 인해 라인강방면군은 전멸당했고 라인강방면군 방어에 치중했던 카를 대공 덕분에 오스트리아는 급히 군대를 틀어 뷔름저가 갇혀있던 이탈리아 만토바를 구원하기로 결정했다.(2차구원군) 순식간에 나폴레옹은 3만의 군대로 7만의 오스트리아군을 상대해야할 위기에 쳐해있었고 나폴레옹은 최초로 야전에서 패퇴를 거듭했다. 여기서 나폴레옹은 적의 보급을 끊어 오스트리아의 대군을 굶겨죽이려는 발상을 생각해냈고 또다시 한번 본대를 [[아르콜 다리 전투|아르콜]]로 보냈다. 당시 아르콜은 오스트리아의 식량창고가 있던 곳으로 3000의 수비대가 주둔 중이었는데 나폴레옹은 기병대를 이용 우회기동을 통해 다리를 돌파하고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후 오스트리아는 다시 한번 식량문제 때문에 주춤하고 티롤에서 군대를 모집 중이었던 알빈치장군을 보내 만토바를 구원하려 하였으나(3차구원군) 이미 식량문제 때문에 사기가 떨어진 오스트리아의 1, 2차구원군은 전투에서 비협조적이었고 나폴레옹은 손쉽게 리볼리 전투에서 알빈치의 군대를 격파. 이후 오스트리아의 [[밀라노 공국]]을 장악하고 포위 중인 만토바에 총공세를 가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